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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

[데못죽] 유리색으로 푸르게 반짝이는

by 제이@J 2021. 11. 12.
*[Commission] 조각글 커미션 공지사항

*커미션 샘플 글, 오늘의 커피 타입(8,473자)

*데못죽(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류청우 드림.

*드림주 이름有.

*BGM
Sereno - 계절의 이름은 파랑

 

짧은 봄이 지나고 어느덧 여름이 찾아들었다.

봄을 맞이하여 선선하고 포근하던 날씨는 5월이 되자마자 차차 열기를 품기 시작했고, 학교까지 이어지는 긴 등굣길에는 짙푸른 녹음이 무성했다. 여름이 아닐 적에도 점차 뜨거워지는 기온에 하루종일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는 했는데, 초여름에 접어들자마자 숨이 막힐 듯 더워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완연한 여름이었다. 무성하게 피어난 잎사귀를 따라 산산히 바람이 불어왔다. 흔들리는 나무 소리와 함께 제 머리카락이 길게 흩날리고, 그 위로 너른 그늘이 잔잔히 떨어져 내렸다.

“더워…….”

작게 탄식하는 목소리와 더불어 도서실의 창가에 앉아있던 천예림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의 교목이기도 한 느티나무가 창밖 너머에서부터 그녀가 앉아있는 자리까지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물론 이 그늘만으로는 무거운 더위를 완전히 잡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그녀의 얼굴 바로 위에서 내리쬐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팔랑. 불어온 바람을 따라 흔들리듯, 유려한 그녀의 손가락이 손안에 있던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기다가, 이내 다시 한숨을 내쉬며 책을 덮었다. 꽤 두꺼워 보이는 책의 표지엔 ‘대입을 위한 연기론’이란 제목이 크고 굵게 쓰여 있었다. 날이 더워서인지 도저히 독서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이렇게 덥다면 슬슬 냉방을 틀만도 하건만,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다니고 있는 이 자랑스러운 모교에선 에어컨을 좀 더 한참이나 아껴둘 참인 모양이었다. 날이 더워도 너무 더웠다.

“천예림!”

드르륵하고 도서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낯익은 소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안 그래도 사람 한 명 없던 조용한 도서실인데, 큰 목소리가 한마디 들리자마자 텅 빈 공간이 쩌렁쩌렁 울렸다. 예림이 반사적으로 사서 선생님께 시선을 돌리면 쉿, 하고 제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댄 선생님이 그녀와 소녀를 사납게 번갈아 가며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미간을 왈칵 구기는 것으로 보아하니, 평화로운 정적을 깨고 갑작스럽게 울린 소음에 화가 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예림이 세 번째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쪽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고 있는 선생님을 향하여, 그녀가 살짝 고개를 숙여 먼저 사과를 표하면 그제야 그의 얼굴이 환히 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런 그녀의 수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는 성큼성큼 발을 내딛어 천예림이 앉아있는 자리로 다가섰다. 예림과 같은 반 친구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한 수정이였다.

“여기에 있었네, 엄청 찾았잖아!”

어쩐지 평소보다 배는 흥분한 것 같은 기색에 예림이 잠시 의아한 듯 얼굴을 기울였다.

“무슨 일인데?”

들뜬 친구의 목소리에 고개를 든 그녀가 눈을 가만히 깜빡이며 속삭였다. 무슨 볼일이냐고 냉담히 되묻는 그 말투에도 불구하고, 예림에게 바짝 다가서는 수정이의 기세는 정말 거침이 없었다. 머뭇거리는 기색 하나 없이 가까이 다가온 수정은 그녀의 곁에 서더니 찡긋 윙크까지 날리며 밝게 웃어 보였다. 수정이는 처음부터 그랬다. 예쁜 미인의 서늘한 얼굴이란 흔히 아름다운 만큼 무섭다고들 하지 않던가. 어딘지 모르게 초연하고 차분한 예림의 성정이면 더욱 그런 뒷말이 많았다. 누가 봐도 위축이 될 만한 모습인데도 수정은 언제나 그런 예림에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장난기가 잔뜩 서린 목소리로 수정이 그녀의 팔을 잡아채더니 꼬옥 팔짱을 껴왔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예림이 놀라기도 전에, 수정이가 있는 힘껏 예림을 도서실 밖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잠깐만!”

“천예림, 빨리! 점심시간 곧 끝난단 말이야!”

“야, 안 그래도 무슨 일인지 설명은 좀……!”

자신이 앉은 의자에서 반강제로 일으켜 세워진 예림이 가기 싫은 동물병원에 억지로 끌려나가는 고양이 마냥 도서실 문 바깥으로 질질 끌려나갔다. 문밖으로 나서기 직전에서야 사서 선생님이 끌려가는 천예림에게 힐끗 눈길을 주다가 이내 가벼이 손을 내젓고 있단 것을 깨달았다. 예림이 꺼내둔 책은 알아서 정리하겠다는 몸짓이었다. 야, 빨리!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는 그녀의 의사는 깔끔하게 무시한 수정이가 다시 팔에 힘을 주며 강하게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앞뒤 설명도 없이 같이 가자며 재촉하는 친구의 처사에 제 이마를 감싸 쥐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람의 이야기는 좀 들어야 할 거 아냐.’

복도로 나선 두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단단히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예림의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맞잡고 있는 손을 뿌리칠까하고 아주 잠시 고민 해봤지만, 결국에는 또 수정이의 손에 억지로 끌려 나갈 것임이 확실했기 때문에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기를 택했다. 곧 종이 칠 건데, 어딜 이렇게 가자고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말도 없이 자신이 데리고 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가 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야, 천예림! 도수정! 어디가?”

아직은 점심시간인지라 다양한 친구들이 복도에서 수다를 떨며 지나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지나가는 예림과 수정을 보며, 같은 반 친구 몇 명이 손을 흔들며 말을 건네왔다. 누구에게나 오해받기 쉬운 태도를 내비치고 있는 예림이었지만, 이렇게 서슴없이 다가서서 손을 내미는 친구들이 있기에 어쩌면 그녀의 학교생활은 평탄하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 잠깐! 학교 뒤편에!”

“아, 예림이랑 연습 구경 가게?”

“쉿!”

──연습 구경?

조용히 하라며 빈손을 들어 올린 수정이가 말하던 친구의 입을 잽싸게 막았다. 의문이 서린 예림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수정이가 후다닥 제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그녀를 데리고서 앞장섰다.

“무슨 연습인데 그렇게 서둘러?”

“에이, 가보면 알아!”

어째 물어봐도 순순히 대답을 해주지 않을 분위기였다. 호기심이 그득히 묻어나는 예림의 눈이 문득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복도를 가로질러, 복도마다 늘어서 있는 창문 바깥을 향했다. 여름과 어울리는 푸른 색감이 넓직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푸른 하늘 아래로 눈 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더운 여름 날씨였다. 이런 여름에 학교 뒤편에서 하는 연습이라고 한다면, 역시 옆 학교의 야구부인가. 제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 한 방울이 새하얀 와이셔츠를 적시는 것이 느껴졌다.

 


 

수정이의 손길을 따라 억지로 끌려온 곳은 그녀의 말마따나, 학교 뒤편에 있는 넓은 연습장이었다. 고등학생들이 연습할 수 있는 연습장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크겠나하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 크기는 가히 학교 앞에 펼쳐져 있는 운동장만 했다. 아니, 사실 그보다도 조금 더 컸다.

사실 이곳은 학생들을 위한 연습장이라기보단, 일종의 ‘후원장’에 가까운 장소였다. 두 사람이 다니고 있는 예고를 운영 하고 있는 사립재단에서는 그녀의 학교 외에도 바로 인근에 붙어있는 체육 고등학교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었다. 체육특기생을 위한 복지만큼은 분명 전국에서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을 이 체고는 전국구 청소년권 야구대회 본선 진출은 물론 우승까지 빼놓지 않는 강호교임과 동시에 다양한 스포츠 꿈나무들을 위한 시설이 빈틈없이 구비 되어 있는─그야말로 모든 스포츠인을 위한 꿈의 엘리트 학교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그녀가 다니고 있는 예고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학교에는 매해 마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지원자가 몰려들었고, 또 재단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업의 후원을 받는 일이 자연스러운 곳이다 보니 교내 환경 또한 꽤나 풍족한 편이었다. 재단에서는 그곳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을 위하여 그에 맞춘 연습장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충실히 꾸렸으며, 결과적으로 이곳은 예림이 다니는 학교와 바로 앞뒤로 붙어있으면서 함께 같은 재단 아래에 소속되어 있는 탓에 사실 반 정도는 서로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장소로서 자리하게 되었다. 물론 일단은 서로 다른 학교인 이상 커다란 펜스로 두 학교가 서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맘만 먹으면 그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철조망을 훌쩍 뛰어넘어 상대 학교의 부지로 향하는 일이야 어렵지 않았다. 특히나 체육특기생이 많은 체고 쪽에서야 이 정도 담을 뛰어넘는 일쯤은 눈감고도 할 수 있을 터였다. 실제로 옆 학교에 남자친구를 둔 친구들이 그렇게 몰래 벽을 뛰어넘다가 선생님께 걸리는 일도 꽤나 수두룩하다고 들었다.

연습장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벽 너머에선 이 무더운 열기에도 불구하고 이웃 학교의 야구부가 연습을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깡, 하는 맑은 철제배트 소리와 함께 하얀 공이 새파란 하늘 위로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뭐야, 역시 야구였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예림이 가만히 고개를 주억이고 있으면, 그녀의 손을 잡은 수정이 다른 방향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얼떨떨한 얼굴을 한 예림이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여전히 장난스레 웃고 있는 수정이가 작게 속살거렸다.

“이쪽이야.”

얼결에 다시 수정이가 이끄는 대로 발길을 옮기게 된 예림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야구부가 연습하는 곳에서부터 한참을 떨어진 곳으로 쭉 걸어들어왔더니, 마치 그 주변만 별세계인 것처럼 조용해졌다. 마치 이야기 속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처럼 주변의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져, 그녀는 자꾸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기 어딘데?”

“양궁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정이의 턱 끝이 까딱이며 조용한 연습장 끝을 가리켰다. 학교 뒤편에 있는 연습장 중에서도 이렇게 가장 구석진 자리까지 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넓은 철조망이 주변을 빙 두르고 있었다. 수정이 가리킨 방향으로 그녀가 고개를 틀면 제법 거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막힌 것 없이 탁 트인 연습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육상 레일 같은 것이 바닥에 나열되어 있었고, 그 레일 너머에는 색색의 과녁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하얀 선의 가장 안쪽 끝에는 아마 체고의 학생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줄지어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좀 더 자세히 보라며 콕콕 제 옆구리를 찌르는 수정이의 행동에 예림이 그 방향으로 무심코 눈길을 주면, 그중에 한 남학생이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천천히 느린 움직임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보였다.

“…….”

소년이 눈을 감고서 심호흡을 반복했다. 움직이기 불편해서인지 짧게 쳐낸 검은 머리카락이 산들거리는 바람에 흔들리고, 아래로 곱게 내리깐 긴 속눈썹이 찬찬히 그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더니 선명한 푸른 빛을 드러낸다. 여름의 푸르름을 그대로 녹여 담아낸 것만 같은 새파란 시선이 정면의 사냥감을 곧게 응시하고 있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남학생의 옆얼굴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자니, 자신의 호흡이 함께 멈추는 것 같았다. 푸르게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니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째서인지 도저히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소년의 호흡이 짧게 멈추고─동시에 얼어붙어 있던 공기가 다시 움직였다.

휘익, 탕!

예림이 생각한 것보다 한 박자 늦은 타이밍으로 제법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그녀가 눈을 깜빡일 틈도 없이, 화살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더니 이윽고 저 끝자리에 세워져 있는 목표에 정확히 꽂혔다. 조금 전까지 완전히 멈춰있던 초침이 다시 째깍이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멀찌감치에서 구경하는 그녀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화살은 거의 과녁의 정중앙에 꽂힌 것으로 보였다. 이럴 때 양궁에서는 분명…… 텐이라고 하였던가. 천천히 제 손에 잡힌 활을 아래로 늘어트린 소년이 턱 아래를 타고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화살의 위치를 확인한 양궁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감탄 섞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저만치에서 들려왔다.

“아.”

양궁부. 와글거리는 학생들의 외침과 함께 그녀가 소리 없이 입을 벌리더니, 그제야 왜 이 연습장이 이리도 조용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양궁은 플레이어에게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운동 중 하나였고, 양궁선수들이 활시위를 매기는 동안은 언제나 고요와 적막이 함께하는 스포츠이기도 하였다. 작은 감탄사를 내는 예림의 반응을 보고서 뭐라고 생각한 것인지, 곁에 있던 수정이 활짝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어때, 끝내주지! 내가 너 점심시간에 좋은 구경시켜 줬다! 안 그래?”

“아니, 그 정도까지야……그냥 양궁부 연습 구경하는 거잖아.”

양궁 연습이라니, 참 드문 광경이기는 했다. 하지만 결국 그냥 평범하게 양궁부의 연습을 하는 풍경이 아닌가. 어쩐지 뻐기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이는 친구에게 예림이 조금 시큰둥하게 그렇게 말을 받자니,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수정이가 자리에서 펄쩍 뛰며 놀라는 것이 보였다.

“뭐야, 예림이 너 혹시 몰라?”

“모르다니?”

“쟤 말이야, 활 쏘던 남자애!”

“응, 잘 쏘던데.”

“아니, 쟤가 걔잖아! 류청우! 국대 후보말이야!”

마치 단호히 선을 긋기라도 하는 것처럼 똑 부러지는 말투였다. 아, 그러고 보니 예림도 얼핏 지나가는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금메달리스트를 꿈꿔도 좋을 만큼 출중한 실력을 지녔다고 하는 양궁부 에이스, 국가대표선수 후보이자 프로 유망주라고 하는 남학생이 옆 학교에 있다고 하는 이야기. 그게 아마 저 소년이었나보다.

“아, 쟤가 그……?”

“오늘 류청우도 오랜만에 학교에서 연습하는 거잖아. 안 그래도 우리 학교에서 유명하신 배우 천사랑 씨 아니랄까봐. 아무튼…… 들려오는 소문에 둔한 거 봐라.”

“내가 유명한 거랑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얘 좀 봐라, 허 참. 혀를 짧게 찬 수정이가 세차게 좌우로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 유명한 공인 연예인일수록 주변에서 도는 소문과 사람들의 눈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법이고, 혹시라도 모를 일은 미리 사전에 방지를 해두는 일이 필요하단 것이 친구의 평이었다.

“……흐응.”

“반응이 식었네! 아니, 잘 생겼잖아! 내가 볼 땐 쟤 얼굴이 그냥 연예인 상이라니까! 우리 반만 해도 쟤 팬인 애들이 잔뜩이라고!”

“그래봤자 내 팬이 더 많을 걸.”

“아니, 그야 아역시절부터 줄곧 연기해온 사람을 어떻게 이기겠냐. 하여간에 너는…… 늘 공부 아니면 연기가 우선이지. 좀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

“그래서 너는 소문 말고 좀 공부에 관심을 갖고?”

“야, 천예림. 인간적으로 우리 사람을 팩트로 후려패고 그러지는 말자…….”

투덜거리던 수정이가 다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늘어놓았다. 안 그래도 요즘은 국대 후보선수로서 훈련 합숙도 잦고, 다른 지방으로 원정을 가는 일이 많다고 해서 이렇게 학교에서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했다.

“수정아, 그보다 이제 15분 후면 종칠 거야.”

“허, 진짜네. 이번 시간 담임이지?”

5교시를 장식할 수업이 담임 선생님이 맡고있는 영어임을 깨닫고선, 수정이가 먼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이어 예림이도 천천히 연습장 바닥에 깔린 흙을 밟아섰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제 자리에서 멈춰서더니 천천히 뒤를 돌았다.

떠들썩한 양궁부 부원들 사이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파란 눈동자가 잠시 보였다가, 이내 다시 등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지금……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 금방 몸을 돌린 것을 보면, 어쩌면 단순히 그녀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천예림! 가자!”

파란 하늘 위로 붕붕 손을 흔들고 있는 친구가 빨리 가자며 그녀를 닦달했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그렇게 발길을 재촉을 하더니, 성격이 급한 것은 영 어떻게 되질 않는 모양이었다.

“아, 응. 지금 갈게!”

천예림이 다시금 교사로 나아갔다. 점차 멀어지는 자그마한 등과 그 위를 드리우는 기분 좋은 녹음이 바람에 길게 휩쓸렸다.

 


 

“야, 청우야. 연습하다가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있어.”

멍하니 자리에 서 있는 류청우의 어깨를 그의 선배가 툭하니 치며 말을 걸어왔다. 혹시 날이 더운 나머지 더위라도 먹은 것은 아닐까 사뭇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양궁부의 에이스임과 동시에 국대 후보로서 유력한 선수이기도 했으니, 이러한 걱정과 시선은 꽤 익숙한 것이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걱정을 끼칠 생각은 아니었는데.’

미안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청우가 작게 고개를 숙여 보이면,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것처럼 선배가 어깨를 으쓱였다.

“점심시간도 곧 끝날 거야. 난 먼저 정리하고 가려는데, 너는?”

“네, 저도 정리하고 금방 갈게요. 먼저 가세요, 선배.”

선배가 건네든 수건을 받아든 청우가 제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조용히 웃어 보였다. 그의 말에 알겠다는 것처럼 수긍한 선배는 자신의 짐을 가뿐히 정리하더니 곧장 연습장을 나섰다. 청우도 제 짐을 챙기고서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가 문득 그가 고개를 들어 연습장을 가리고 있는 철조망 너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연습을 구경하던 낯익은 소녀의 등이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옆 예고의 유명한 미인이자─배우로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한 천예림(천사랑)의 등이었다. 시선이 마주친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눈을 돌리고 말았지만, 어째서인지 청우는 자꾸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양 뺨에 확하고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정말 더위를 먹은 것은 아니겠지. 고개를 옆으로 저은 그가 수통 안에 남아있던 물을 제 얼굴 위로 끼얹었다. 차가운 물의 온도와 함께 그제야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다시금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청우는 결국 그녀가 펜스 너머에 있는 학교 건물에 거의 다다를 즈음이 되어서야 겨우 등을 돌릴 수 있었다.

유리색으로 푸르게 반짝이는, 어느 한낮 여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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