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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

[1차] Merry Veil✽Dress up!

by 제이@J 2022. 10. 6.
*[Commission] 조각글 커미션 공지사항

*커미션 샘플 글, 오늘의 커피 타입(4,980자)

*
1차, MPC이현우&여진&난
*자캐 커뮤니티 《인게이지 아웃사이드》의 세계관 포함, 논커플링.

*BGM
MONKEYBGM - Be OK

 

“싫습니다.”

무뚝뚝한 말투로 이현우가 그렇게 대꾸했다. 표정 없이 차분한 얼굴임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 있음에도, 이다지도 훤하게 속내가 들여다보이는 일이 또 있을까. 그녀는 그 사실이 몹시 우습게 느껴져 저도 모르게 크게 웃음을 터트리려다가 다급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간 그때는 정말 눈앞에 있는 그가 매정히 자리를 벗어날지도 몰랐다.

“아가.”

꾹 눌러 참은 웃음을 간신히 삼켜내며, 부드럽고 살가운 목소리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일모레면 곧 서른이 되는 청년을 향한 것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호칭이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부름도 서로 익숙해지고 말았다. 정말로 본의는 아니지만 말이다. 피곤한 것인지 제 눈가를 한 손으로 덮은 남자가 한숨처럼 말을 토해냈다.

“……싫다고 했습니다.”

사이를 두고 나온 말에는 떨떠름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렇게나 싫은 걸까?

평상시에도 현우에게 가벼운 부탁이나─그에게는 아마 강제적일─권유를 떠맡기고는 하는 그녀였지만, 그가 이렇게 싫다며 단호하게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정말이지 드문 일이었다. 눈앞에 있는 청년은 언제나 입으로는 이걸로 마지막이라고 못을 박으면서도, 그 이상의 불평 없이 그녀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고는 했으니까.

“저는…….”

정말 서럽고 야속하다는 것처럼 눈썹을 축 늘어트리며 그를 바라보면 조용히 곁에 서 있던 이현우가 초조한 듯이 입술을 달싹이는 것이 보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녀의 그늘진 얼굴을 보자마자 어쩔 수 없으니 들어주겠다는 분위기로 바로 넘어왔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이번 부탁은 정말로 싫은 모양이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면 그녀 또한 퍽 당혹스럽고 갑작스럽게 느껴졌을 부탁이기도 했으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분명히 잘 어울릴 텐데.

“아가, 정말 이번 한 번만 들어줄 수 없을까요?”

그가 다시금 거절의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여 진의 애절한 목소리가 남자의 입을 가로막았다. 현우가 곤란한 기색을 드러내며 그녀를 한동안 또 가만히 마주하고 있으면, 진의 입에서 안타까움이 그득 담긴 말이 속삭이듯이 흘러나왔다.

“저도 갑자기 부탁받은 거라서…… 거절하기 어려웠어요.”

저는 아가밖에 없답니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정말 간절한 애원이나 고백과도 같이 보였을 행태에 이현우가 또다시 제 눈가를 짚었다. 아니, 백 퍼센트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살만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고 한다면 오늘이 평일 오전 이른 시간이고, 그녀의 펫숍에는 그들 외에 다른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일까.

“……매번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니, 자꾸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습니까.”

“제겐 정말로 아가밖에 없는걸요?”

“당장 도와줄 사람이 달리 없다는 의미에선 분명 그렇겠습니다만…….”

이미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을 겪어왔던 이현우가 말을 잇다가 하아,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착잡함을 드리운 남자의 표정은 끝내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마치 그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라는 것처럼 강렬하게 쏟아지는 시선이란, 눈앞에 있는 사내에겐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안겨주는 듯했다.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가 유일하단 것이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고. 굳이 말한다면 주역으로서의 그의 업이자, 일종의 자업자득인 상황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본인은 그에 대해 일말의 자각조차 하고 있지 않으니 하는 수 없었다.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입니다.”

“네, 물론이죠.”

그 또한 늘 하던 한마디와 대답이었다. 진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글거리며 웃어 보이면, 현우가 불만이 담긴 눈길로 그녀를 응시하는 것이 보였다. 그래봤자 이미 자신의 입으로 승낙해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진은 그저 가벼이 웃어넘길 따름이었다.

“고마워요, 아가.”

“……괜찮습니다.”

무덤덤한 그의 대답이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그녀가 현우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도망가버릴까 싶어 꼭꼭 숨기고 있던 웃음을 마음껏 환히 내보이며, 기다렸다는 듯이 현우의 등을 가게 한쪽으로 떠밀기 시작했다. 무어라 말을 붙일 찰나도 주지 않는 번개 같은 움직임이었다.

“나머지는 저쪽 방에서 확인해주면 되니까요, 준비는 다 되어있어요.”

아니, 잠깐. 당황한 현우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가볍게 무시하였다. 어려워 보이던 일이 처음 예상했던 그대로 쉽게 해결이 되어주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꽤 기분이 들뜬 것을 알았다. 이현우가 무어라 그것을 제지하는 목소리를 내려고 하면, 가로채기라도 하는 것처럼 진이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혹시나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줘도 괜찮으니까요.”

자, 자. 아가, 빨리요. 햇살 같은 밝은 미소와 함께 그녀가 이현우를 방안으로 밀어 넣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문까지 제 손으로 닫아주며 그에게 윙크를 남기는 게 아닌가. 문이 닫히기 직전에 언뜻 살펴보기로는 스태프 룸이라고 적힌 이름표가 붙어있는 것 같았다.

우당탕.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이현우는 결국 그에 대한 모든 대꾸를 포기하고, 얌전히 가게 안쪽에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쪼르륵.

이현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막간의 시간을 틈타, 느릿하게 커피를 내리고 있는 그녀의 발치에서 돌연 검은 형체가 불쑥 솟아났다. 긴 잠에 빠져 있었던 것인지, 온종일 그녀의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녀의 하나뿐인 반려 마수가 지금 그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까만 털과 그 위의 하얀 얼룩무늬가 인상적인 그 마수는 개와 고양잇과의 짐승을 적절히 섞어 만든 듯한 커다란 외형을 하고 있었다.

“난아, 일어났니?”

진의 짧은 부름에 커다란 이 귀를 쫑긋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나른한 것처럼 입을 쩍 하니 벌리고 연신 하품을 늘어놓던 그림자 마수가 얼마 안 가 갸릉갸릉 하는 소릴 내며 그녀의 무릎에 뺨을 문지르는 것이 보였다.

“마침 잘됐어, 너도 한번 보렴.”

분명 즐거울 거야. 곱게 눈가를 접어 웃어 보인 그녀가 다정한 손길로 마수의 털을 빗어 내렸다. 진의 하얀 손가락이 제 어수선한 털을 정리해주고 있음을 아는 것인지, 난은 네발을 쭉 펴더니 이윽고 바닥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서 드러누웠다.

그윽한 커피의 향기가 가게 안에 가득 퍼져나갔다. 간편한 인스턴트 커피에 불과했지만, 이런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았다. 따사로운 햇살에 잔잔한 공기까지 어우러져 한결 더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무척이나 느긋하고 온화한 시간이었다.

“……이 평온은 얼마나 오래 갈까요?”

듣는 이 한 명 없는 고요한 공간 안에 그녀의 나직한 혼잣말이 떠돌았다. 이런 평화로운 시간이 이어질 적이면 진은 정해진 이야기대로──예고도 없이 찾아들 암운을 떠올리고는 했다. 물론 그러한 고뇌에 잠긴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그리고 그녀는 모든 것을 ‘누구’처럼 홀로 헤쳐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흔히 사람들이 말하길, 생각을 하는 것은 자유라고 하지 않는가.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때마침 스태프 룸의 문고리가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녀의 앞에서 발랑 배를 까고 누워있던 난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훌쩍 몸을 일으키고서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몇 번이고 홀짝이던 커피잔을 카운터 위로 내려놓으며 그녀 또한 그 방향으로 눈길을 주었다.

기다리고 있던 주인공의 등장이었다.

파도 위의 새하얀 물결처럼 일렁이는 새하얀 옷감과 그 위를 수놓은 아름다운 은빛 자수. 머리 위로 드리워진 눈부신 베일과 손에 쥐어진 푸른 꽃으로 이루어진 부케.

마치 이것만큼은 사수하겠다는 것처럼 새하얀 드레스 자락 사이로 보이는 그의 검은 부츠는 오히려 그 복장 속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 아가! 너무 예뻐요!”

진이 활짝 웃으며 건넨 그 한마디에 그의 새카만 눈동자가 더욱 까맣게 죽었다. 누군가에게 듣는 예쁘다는 칭찬 자체가 참으로 낯설기 짝이 없었다.

“방에 구두도 같이 놓여 있었을 텐데, 안에서 못 찾았나요?”

“처음에 입어주었으면 한다고 말씀하신 것은…… 드레스만이었잖습니까.”

“어머, 아가도 참. 그런 것치고는 베일도 부케도 제대로 했잖아요. 아, 혹시 힐이 높아서 그렇다면 낮은 걸로 꺼내줄까요?”

“예? 아니……….”

그는 어째서 진이 그의 발 사이즈에 맞는 낮은 구두를 가지고 있는 건지, 저도 모르게 물어볼 뻔했지만 결국 침묵하는 것을 택했다. 많은 것을 알아봤자 좋을 게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아…….”

그녀가 입도록 권한─지인의 부탁이라며 반쯤 억지로 입게 만든─새하얀 웨딩드레스를 느리게 내려다보며 현우가 땅이 꺼져라 깊게 한숨을 내쉬고 있으면, 그 옆자리로 오는 것이 자못 당연하단 얼굴을 하는 난이 눈을 반짝이며 그 주변을 빙빙 맴도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내쫓으려는 것인지 남자가 손을 뻗어 옆으로 내저었지만, 그것을 자신과 함께 놀자는 신호로 받아들인 것인지 난이 폴짝폴짝 뛰면서 그에게로 달려들려고 하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나 이현우가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가 혹여 망가질 것을 우려한 것일까, 진이 사이에 끼어들더니 재빠르게 손을 펼쳐 난의 머리를 뒤로 밀어냈다. 끄응, 하고 작은 소리와 함께 마수가 귀를 축 늘어트리며 눈치를 보더니 재차 제자리에 털퍼덕 앉는 것이 보였다. 마치 지루해~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이현우는 이럴 때면 마수 주제에 참 표정이 다채롭기도 하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아가, 사진을 찍어도 괜찮을까요?”

“안 됩니다.”

“사실 이미 찍었어요.”

“그래서야 사후 보고잖습니까. 지워주시죠.”

“하지만 부탁한 사람에게 드레스를 잘 입어보았다고 전해야 하지 않겠어요?”

의뢰는 제대로 보고해야죠, 아닌가요? 노래하는 것 같은 산뜻한 음색으로 그렇게 말을 덧붙인 진이 씩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살포시 옆으로 접혀 호선을 그리는 눈가가 더없이 얄밉게도 보였다.

“……보내주는 것은 좋습니다만, 사진은 나중에 지워주시죠.”

“흐음, 어떻게 할까요?”

“여 진 씨.”

“후후, 나중에 정리하도록 할 테니까 안심해요.”

조용히 그를 달래오는 진의 말에 이현우가 말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감스럽게도 그 말대로 그녀가 사진을 삭제하는 일은 없었고, 이현우 웨딩드레스 차림의 사진이 그녀의 휴대전화에 고스란히 남아있게 되지만 그것을 이현우가 깨닫게 되는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IMG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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