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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

[1차] Remind of Accident

by 제이@J 2022. 11. 18.
*[Commission] 조각글 커미션 공지사항

*커미션 샘플 글, 오늘의 커피 타입(10,004자)

*
1차, 한여운&류정호
*자캐, 논커플링.

*BGM zukisuzuki BGM - DUTY

 

‘범인을 쫓던 중에 동료가 총에 맞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건 류정호가 경장이 되기 전, 최종 면접[각주:1] 당시에 들었던 면접관의 물음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자신의 대답은 무엇이었더라.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는 본인조차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지난 질문에 대한 것을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몸소 새기게 되리라고는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다. 사람의 삶이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들 말하지만 정말 이리도 파란만장할 필요가 있을까. 곱씹어 생각해봐도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정호야!”

비명과도 같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여운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언제나 어른스럽고 물 흐르는 듯이 여유로운 상대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이런 조급한 얼굴을 보는 것은 정말이지 드문 광경이었다. 상대방의 낯선 표정에 대해 놀라움과 동시에 지금 제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이 어쩐지 멀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와닿는 감각 속에서 그의 사지는 축 늘어지기만을 연신 반복했다. 다급하게 정신을 잃지 말라며 몇 번이고 자신을 추스르는 여운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서 어스름하게 번졌다.

탄환이 박힌 자리가 안 좋았던 것인지 출혈이 유난히 심했다. 쓰러진 자신의 아랫배에서 울컥하고 피가 솟는 감촉이 느껴지고, 그와 동시에 타는 듯한 통증이 온몸에 퍼졌다. 어쩌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류정호!”

정호는 제 총상을 필사적으로 지혈하려 누르고 있는 상대의 손을 있는 힘껏 붙들었다가 가만히 놓았다. 새파랗게 변한 입술로 괜찮다고 정신 차리라며 쓰러진 자신을 다독이고 있던 여운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그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형.”

고통에 일그러진 숨소리 사이로 정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내뱉는 한마디마다 숨이 찼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폐를 강하게 움켜쥐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시야가 끊임없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이대로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죽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와중이기는 했지만, 이쪽을 마주하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맡겨도 괜찮죠?”

정호는 이러한 순간이기에 더욱 서로가 해야 할 일을 상기시켰다. 그들은 경찰이었다.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사람들을 지키고 안전하게 돕는 사람들. 그것은 류정호 자신의 신념이자, 여운의 신념이기도 했다. 눈앞이 제대로 보였다면 분명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을 사람을 향하여 그가 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흥건하게 피를 쏟아내면서도 정호가 미소를 머금었다.

“믿어.”

제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빠르게 달려 나가는 다급한 발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렸다. 류정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부축하고 있던 사람의 손길이 떨어져 나갔음을 알아차렸다. 뒤늦게 도착한 다른 동료들에게 맡겨져 누군가의 흐린 뒷모습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갔다. 멀어지면서도 상대방이 또렷하게 제 이름을 외치며 소리치는 것이 귓가에 들려왔다. 제대로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멀어지는 여운의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 것 같았다.

“나 안 죽어요.”

부탁할게.

물처럼 일렁이기 시작하는 광경 너머에서 짙은 붉은빛이 흩어졌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밀려오는 졸음과 더불어 저 멀리서부터 울리는 희미한 사이렌 소리가 뒤섞이고, 이윽고 새카만 어둠이 정호의 의식을 잠식했다.

 


 

그날은 유독 바쁜 하루였다.

사실 경찰관이란 직업이 본래부터 다방면으로 바쁜 직업이기는 했지마는─류정호의 소속이 폭발물처리반임을 생각한다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사실 크게 바쁠 일은 없을 것이 맞았음에도 불구하고─갑자기 손이 모자란 형사과의 일손으로 차출되어 밤낮없는 잠복 수사의 보조는 물론이고, 그에 대한 사건 경위서 작성까지 돕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사실 말이야 차출이지, 부족한 일손을 돕기 위해 어느 정도 자진하여 지원한 것이기도 했지만.

뭐, 공무원이 다 그렇지 않겠어. 낯익은 형사과의 동료 하나가 작은 목소리로 푸념하며 산처럼 쌓인 사건 자료를 뒤적이는 모습이 보였다. 피곤한 듯 낮게 깔린 그의 음색을 따라 정호가 조용히 주변에 눈길을 던지면 몇몇 사람의 얼굴에 졸음이 그득 묻어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형사과의 사람들은 벌써 이틀이나 밤을 새웠다고 했던 것 같았다. 형사과의 주된 업무가 빠른 해결을 요하는 강력계 사건들인 만큼 늘 정신없이 바쁘다는 것은 그 자신 또한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기는 했지만─이렇게 곁에서 보고 있을 때면 매번 그것이 새삼스레 와닿고는 했다.

피로한 낯으로 줄지어 앉아있는 형사들 사이로 지친 듯이 축 늘어진 공기가 번져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던지던 정호가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으면, 얼마 전에 동료 중 누군가가 휴게실에 새로 커피를 채워놨다 신나게 말하던 것이 문득 기억났다. 마실 걸로 잠시 이 늘어진 분위기를 환기하는 것도 좋을 터였다.

“블랙.”

“저는 아무거나 괜찮아요.”

“……그냥 믹스로 통일하죠?”

“찬성.”

정호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서면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모니터 속 경위서와 피 터지게 싸우고 있던 동료들이 하나둘씩 가벼이 손을 드는 것이 보였다. 그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카페인을 보급해야겠다며 아우성치며 요구하는 그 뻔뻔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가에서 짧은 웃음이 터졌다. 다들 누가 경찰 아니랄까 봐. 정말 이런 눈치 하나는 귀신같았다.

손을 든 인원을 머릿속으로 대강 헤아리며 그가 천천히 휴게실로 걸음을 옮기니, 족히 몇 년은 된 것 같은 낡은 정수기가 정호를 반겼다. 분명 경찰청 내를 오가며 듣기로는 버튼식의 새 정수기로 교체한다는 이야기가 있던 것도 같은데, 그게 벌써 몇 개월 전의 소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 윗선에선 그리 쉽게 비품을 바꿔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러니 다들 사비로라도 반드시 바꾸고 말겠다고 씩씩대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의 입장에선 참 유감스러울 따름이었다. 꺼내든 종이컵을 손에 쥐고서 그가 정수기에서 하나씩 물을 받아냈다.

쪼르륵. 손안에 차오르는 따스한 온기와 함께 은은한 커피의 향이 코끝을 스쳤다.

피곤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잠시 고개를 들던 그의 시선이 문득 벽에 걸린 시계로 향했다. 어느덧 시간은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신이 일에 차출되었던 것이 아마 지난 저녁 무렵이었던 것 같으니. 생각해보면 정호가 이렇게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약 13시간 만의 일이었다. 시계를 확인하고 보니 어쩐지 괜한 피곤이 몰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머리를 찬찬히 옆으로 내저은 그가 그새 버석하게 마른 것 같은 제 눈가를 손끝으로 꾹꾹 내리눌렀다.

“벌써 이런 시간이네…….”

나직한 그의 혼잣말과 함께 어느새 한 계절의 끝자락이 되었음을 알리듯이 서늘해진 아침 공기가 피부 위로 스몄다. 누군가가 환기를 위해 열어둔 것으로 보이는 창문 너머로 살짝 고개를 기울이면 짙게 드리운 하늘 아래 붉게 물든 낙엽들이 처량히 땅바닥에 내려앉다 못해 발에 치일 정도로 소복이 쌓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이 실감 나는 광경이었다.

“류 경장?”

얼마 동안 그렇게 바깥을 응시하고 있었을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등 뒤로 가벼운 손길이 닿았다. 낯익은 부름과 함께 정호가 고개를 돌리면 상대방의 검은 차림새와는 대비되는 하얀 웃는 얼굴이 시야에 한가득 비쳤다.

“어, 형……. 한 경사님.”

한가롭게 바깥을 살피던 중에 저도 모르게 기분이 느슨하게 풀렸는지, 입에 익숙한 호칭이 먼저 튀어나왔다. 재빠르게 정정하기는 했지만, 이쪽을 바라보는 여운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그려지는 것을 보아하니 나중에 이걸로 놀림 받을 것이 눈에 선했다.

“편하게 부르지 그래.”

“아뇨, 아직 일하는 중이니까요.”

얼버무리는 것처럼 웃음을 머금는 정호를 바라보며 여운의 입매가 부드러운 호선을 띄었다. 휴게실에 단둘밖에 없는 상황이니 편하게 말을 해도 좋겠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일하는 중이니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검은 선글라스와 모자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날카로운 눈매 또한 퍽 곱게 접혀 편안한 웃음을 드리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퇴근은 안 했나?”

“음, 일이 바빠서 말입니다.”

“다른 과에서 몇 명 데려갔다고 하더니. 그중 하나가 류 경장이었나 봐.”

“아, 들으셨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나도 지금부터 투입되거든.”

반사적으로 제 입에서 질린 목소리가 새었다. 여기서 더 인력이 추가된다는 소리는 다른 사람들을 더 동원해서라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긴급 사건이 일어났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매번 있는 일이잖나. 그렇게 덧붙이는 여운의 한마디를 그 또한 수긍할 수밖에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나 어디에든 한탄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깨를 늘어트리며 한숨을 푹 내쉬는 정호의 반응을 보고서, 여운이 어깨를 살짝 으쓱거리는 것이 보였다. 제법 친근하고 살가운 태도였지만 이쪽을 직시하는 시선 안쪽에는 진중한 빛이 담겨 있음을 빠르게 알아차린 정호가 침착하게 되물었다.

“……그래서, 이번 일은 어떤 건입니까?”

“긴급 공개수배[각주:2]…… 연쇄 강도살인이야.”

 


 

긴급수배를 받은 것은 서울 관악구 인근에 있는 전당포를 털던 강도 일당으로 인원은 총 세 명이라고 하였다. 번화가 쪽에서 멀리 떨어진 인적 드문 전당포를 노린 절도가 중심이 되고 있으며, 몇 차례의 범행을 문제없이 해결한 이들은 점차 그 수법이 에스컬레이트를 하기 시작하였다고 했다.

“문이 닫힌 가게 안에 우연히 남아있던 주인을 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하얀 화이트보드에 붙여진 수배서를 향하여 순서대로 눈길을 주던 여운이 테이블 위에 올려둔 서류를 톡톡 두드리며 간단한 브리핑을 이어갔다. 단순 절도가 2건, 이어지는 강도살인이 3건. 정호를 비롯하여 하나의 수사팀으로 묶이게 된 전원이 수심 어린 얼굴로 그 위의 문장을 찬찬히 훑어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후부터는 계획적인 강도살인이 된 겁니다.”

일반적인 절도범의 85%가 흉기를 갖고 침입하여, 사람에게 발각될 시에 바로 강도로 돌변해 인명을 살상할 위험이 크다. 거기다 더해 이번 사건처럼 제 범행이 손쉬움을 깨달은 범법자는 이미 ‘범죄’라는 선을 넘은 만큼, 다른 일선을 넘는 것도 쉽게 여기기 마련이었다. 살인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일련의 사건이란 사실상 드문 일이 아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흉기.”

서류를 두드리던 여운의 섬세한 손끝이 우뚝 멈춰서더니, 이윽고 화이트보드 곁에 있던 펜을 집어 들어 하나씩 글자를 새겨갔다. 빨갛게 쓰인 문구를 따라 읽으면 그가 말한 것처럼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에 관한 기술이 선명히 드러났다. 일반적인 절도범의 대다수는 주로 과도·식칼·쇠 파이프 등과 같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흉기를 지닌 경우가 많았다.

“이번 사건을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고.”

[권총.]

상황에 대한 심각성이 더욱 무게를 더하는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민간의 총기 소지 및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개인이 총기를 소지하기 위해서는 총포 소지 허가증을 발행받아야 하며, 이에 대한 허가 또한 엄중한 절차를 거치게 되어있었다. 물론 그것도 합법적이고 일반적인 소지자 라면의 이야기지만.

보통 이런 사건에 연루된 총기라 함은 정상적인 루트를 통하여 손에 넣은 무기가 아닐 것임이 분명했다. 만에 하나 정식적으로 등록이 되어있는 총기인 것이 확인되더라도, 분명히 이 사건과 그 본래의 주인의 연관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확률이 높았다. 삽시간에 번지는 고요 속에서 동료 하나가 조심히 손을 들었다. 질문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음을 드러내는 의사 표현에 사람들이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권총은 어디에서 난 겁니까?”

“전당포에서 보관하고 있던 물건 중 하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미허가 총기일 수도 있죠.”

“총기 종류는 확인되어 있나요.”

한 사람의 물음이 들려오는 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의견이 튀어나왔다.

“K5, 총기 번호는 214102. 앞서 절도 피해를 본 전당포에 있던 물건 중 하나지.”

연달아 파도처럼 밀려드는 질문 세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받아낸 여운이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다. 미리 알아보고 온 것인지 간단한 설명과 함께 보여주는 추가적인 자료가 그의 등 뒤에 세워져 있는 화이트보드 위에 연달아 자리 잡았다.

“범인들은 현재 모두 추적 중입니까?”

정호의 조용한 물음에 다시금 시선이 몰렸다. 이어질 여운의 말을 기다리듯이 재차 사무실 안이 고요해졌다. 이미 절도와 살인으로 수사를 진행하던 건에 대해 추가적으로 긴급 공개수배를 내렸다는 것은 범인에 대한 추적은커녕 목격 진술이나 그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적을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둘은 이미 수사과의 활약으로 체포 완료. 그리고 남은 범인은…… 추적 중입니다.”

 


 

“반복합니다, 범인은 현재 관악산 중턱으로 도주하여……!”

흥분이 섞인 누군가의 목소리가 무전 너머에서 들려왔다. 가끔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거친 욕설도 섞여 있는 것을 보면 좀 전에 산기슭 아래에서 범인을 아쉽게 놓친 동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정호는 지금 여운과 함께 험준한 산길을 파헤치며 달리고 있었다.

관악산.

서울시 관악구와 경기도 안양시, 그리고 과천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 산은 서울의 인근에 있는 산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바위산이 주를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약 40분가량을 달려 범인을 추적한 끝에 그들은 산 중턱에 있는 공터에 간신히 범인을 몰아넣을 수 있었다.

“그만하시죠. 저희는 선생님을 해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간신히 고르며, 절대 잡히지 않겠다고 뒷걸음질 치고 있는 범인을 향하여 여운이 최대한 정중한 어조로 말을 붙였다. 이 상황에서 날카롭게 쏘아붙이거나 상대를 자극하는 언동을 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최대한 대상의 말을 들어주며 무기를 내려놓도록 하고, 그 후에 안전히 제압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로 중요시해야 하는 일이었다. 힐끔 여운이 고개를 돌리면 그의 말에 맞춰 정호가 그 옆에서 아무것도 없는 빈손을 위로 흔들어 보였다.

“시, 시끄러워! 물러나라고, 이 새끼들아!”

붉게 핏줄이 선 벌건 눈을 한 남자가 금방이라도 발작할 듯이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그들의 작은 언동 하나에도 위협으로 느낀 것인지 남자가 허둥지둥 재킷 안주머니에 욱여넣었던 권총을 꺼내어 그들에게 겨누기까지 하였다. 범인이 다시금 한 걸음 뒤로 조심스레 발을 뒤챘다.

도망치는 내내 쏠 기미를 보이지 않기에 권총은 이미 붙잡힌 일당 중 한 사람이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총기를 가진 실행범이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남자였던 모양이었다.

“이거 안 보여! 내가 못 할 줄 알고!?”

금방이라도 발사될 듯한 총구가 앞에 서 있던 여운을 향하고 있었다. 정호가 내심 초조하게 혀를 차며 고개를 작게 저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절망적인 벼랑 끝에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취할 행동이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도 총을 꺼내 들려던 순간, 범인이 천천히 총구를 옆으로 돌리더니 그것을 류정호에게 겨냥했다. 일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예감은 거짓말같이 들어맞고 말았다.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청결함이 눈에 띄는 새하얀 천장이었다.

몸은 성한 곳 없이 여기저기 욱신거리며 아픔을 호소했고, 그가 간신히 힘겹게 눈을 뜨면 지금 자신이 누워있던 곳이 하얗고 말끔한 침대 위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눈부신 형광등의 불빛이 반짝였다.

“윽…….”

몸을 일으키려고 허리에 힘을 주면 배에서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강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반사적으로 꽉 깨문 입술 사이로 가늘게 신음이 새었다.

여긴 어디지? 아직 가시지 않은 통증으로 숨을 헐떡거리던 정호는 자신의 어렴풋이 남은 기억을 한참 되짚어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 의식을 잃고, 깊은 어둠 속에 파묻혀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하얀 천장을 바라보는 시선에 혼란이 묻어났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이해가 되지 않아 그가 잠시 눈만 깜빡거렸다. 어지러운 머리를 추스른 류정호는 스스로가 왜 여기에 있는지 마지막에 무엇을 보았는지 차차 기억을 되살렸다. 그래. 분명 자신은 총에 맞아 쓰러졌다.

─범인은 어떻게 되었지. 그리고 형은?

떠올린 사실과 함께 그가 통증을 완화하기라도 하듯이 숨을 반복하여 깊게 내쉬고 있으면, 마치 때를 가늠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사이로 끼어드는 익숙한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괜찮아?”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그가 조금 전까지 찾고 있던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실 문가 쪽에 기대어 서 있던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그의 곁에 앉았다. 정호의 마지막 기억에도 남아있는 절친한 동료이자 형─한여운이었다. 여운은 어딘지 지친 듯한 시선으로 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픈 데는?”

걱정 어린 눈빛이 정호를 꿰뚫기라도 할 것처럼 지긋이 향하고 있었다.

“어…… 조금, 여기저기 아파.”

웃음기를 섞은 그의 대답에 어떻게 생각한 것인지 여운이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 보였다. 깊은 걱정과 안도가 교차하는 그 모습에 정호는 저도 모르게 여운에게 손을 뻗었다. 힘없이 뻗어오는 손끝이 그대로 상대의 옷소매에 맞닿았다. 그 와중에 정호의 관찰안이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상대의 옷에 묻어있는 시커먼 핏자국을 잡아냈다.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혹시 자신이 정신을 잃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걱정하여 내내 여기에 머문 것인가. 그렇다면 쉬어야 할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기억하는 옷차림 그대로인 여운의 몸을 꼼꼼히 살피던 정호가 상대방의 물음에 조심스레 입을 뗐다.

“미안, 걱정했을 텐데.”

피하려고 했다면 충분히 거둬낼 수 있었을 느린 손길이었지만, 여운은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만 볼 뿐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짙게 근심이 드리운 얼굴을 가만 올려다보며 정호가 살포시 눈을 접어 웃었다.

“너…….”

자신도 모르게 솟구치는 감정이 있었던 것인지, 무어라 반사적으로 입을 열려던 여운이 이내 가만히 입술을 깨물며 말을 삼켰다. 조금 더 자신이 범인을 잘 설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면 자신이 다친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평소에도 하얗다고 생각하는 여운이었지만 유난히 얼굴이 더 창백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물론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당사자는 태연한 낯으로 이렇게 웃고 있을 뿐이었지만.

“범인은 어떻게 됐어?”

그늘진 여운의 얼굴을 한동안 가만히 올려다보던 정호가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기며 한껏 더 자신에게로 끌어왔다. 그 작은 움직임에 맞춰 상대가 순순히 허리를 숙이는 것이 보인다. 제 위에 길게 드리운 그림자 너머로 가만히 정호의 손이 닿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가만히 상대의 어깨를 쓸어 내려주는 행동에 여운이 찬찬히 눈을 내리깔며 속삭였다.

“잡았어.”

“다행이네.”

“그래, 정말 다행이지.”

그리 말하며 조심스럽게 제 눈가를 덮어오는 손짓이 퍽 따뜻하게 느껴졌다. 맞닿아오는 따스함에 정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 이게 웃을 일인가?

은은하게 퍼지는 정호의 미소를 보고 한동안 말없이 눈가 위를 쓰다듬던 여운이 불퉁한 어조로 나직하게 투덜댔다. 그렇게 말하면 그 또한 할 말이 없기는 했다. 짧은 침묵 사이로 묘한 포근함이 감돌았다.

“형.”

“왜?”

“고마워.”

이어지는 물음도, 돌아오는 대답 또한 없었다.

자연스럽게 감긴 눈꺼풀 너머에 있을 사람은 분명 쓰고 복잡한 얼굴을 하면서도 정호를 내려다보며 말없이 웃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모든 것이 해결되었음을 인지한 순간, 몸 곳곳에 매여있던 긴장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뒤늦게나마 정신적인 피로가 몰려들고 새카맣게 물든 시야 너머에서 낮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건 내가 할 소리지.”

잔잔한 온기를 담은 여운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그의 의식은 천천히 꿈속으로 가라앉았다. 기나긴 하루의 끝이었다.

IMG by. Pixabay

 

  1. 20016월부터 경찰공무원 면접시험제도가 변경되어 최종 면접은 1차 집단면접과 2차 개별면접 두 단계로 나뉘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최종 면접은 순경·경사급 면접 위원들이 지원자들을 동료로서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집단면접과 간부진이 평가하는 인성 위주의 개별면접으로 진행된다. [본문으로]
  2. 경찰관서의 장은 법정형이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범죄의 상습성, 사회적 관심, 공익에 대한 위험 등을 고려할 때 신속한 검거가 필요한 자에 대해 긴급 공개수배 할 수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경찰청훈령 제868, 2018. 4. 19. 일부개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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