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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

[1차] 천혜의 교리

by 제이@J 2023. 8. 1.
*[Commission] 조각글 커미션 공지사항

*커미션 샘플 글, 컵라면 타입(4,642자)

*1차, 오리지널/창작/자캐

*자캐 커뮤니티의 세계관이 배경이 되어 있는 자작 캐릭터, 논커플링 2인 페어 기반.
사이비 종교(창작) 언급 및 해당 종교에 대한 신앙이나 사상이 나옵니다. 종교적으로 몹시 맞지 않거나, 불경한 말이 나올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은 아래의 샘플을 읽지 않으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BGM Jordan Hatfield - Darkness

 

 

“자네는 신을 믿나?”

신을 믿는 자이건 믿지 않는 자이건, 평생에 아마 한 번쯤은 그 존재의 증명에 대한 질문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었다.

다소 신성모독적인 의견일 수도 있으나─그 신성한 존재의 실증(實證)이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존재가 그 존재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대로 말한다면 아무도 믿는 자가 없다면, 신은 결국 허구의 우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신’을 믿고 그 존재를 마음 깊이 따르고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그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신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인 것 인지도.

돌연 울려 퍼지는 그 낯선 물음에 버스정류장에 마련된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던 청년이 애매한 얼굴을 돌려주며 어색하게 웃었다. 거리를 두고 싶은 것처럼, 혹은 낯선 이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표정이었다.

“어어! 사이비 전도하고 그런 사람 아니야!”

말을 꺼낸 그가 황급히 두 손을 내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맹세컨대 자신은 정말로 그런 종교의 종이라는 글자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저 대충 이런저런 잡지식이 많은 정도일 뿐이지.

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청년이 꽤 곤란한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는 것이 보였다. 얼굴이나 키가 퍽 훤칠해 보이는 것이, 이 구석진 촌구석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였다. 뭐,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거참, 어차피 여기 버스 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잖아. 그냥 그동안 이야기나 좀 하자는 거지.”

스스로 변명이라도 하듯이 빠르게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도 청년은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안 그래도 차도 얼마 안 지나다니는 시골―가끔 트럭이나 논밭에서 몰고 다니는 동네 주민의 트랙터가 지나다니면 모를까―인데다가 시간 늦은 저녁인지라, 이렇게 인적 드문 곳에서 단둘이라는 상황자체도 좀 찝찝하고 껄끄러운 차였다.

“뭐시냐, 있잖아. 그거. 스, 스모…… 맞아, 스몰토크!”

생각난 단어를 허둥대며 덧붙이자, 제 말을 듣던 청년이 조금 웃었다. 자신이 먼저 수상쩍게 말을 붙여놓고 필사적으로 해명하려 드는 것이 우스웠던 모양이었다. 그도 반대의 상황이라면 웃어버렸을 것이다, 암. 이해심 많은 그는 이해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맞아, 이 동네에선 꽤 유명한데…… 혹시 ‘삼천세계’라고 아나?”

자신이 이렇게 말을 꺼내면, 상대가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그의 말에 흥미를 가진 것인지 청년이 입가에 하얀 미소를 그리며 대답했다.

“물론, 잘 알죠.”

 

 

수많은 이들이 이 땅에서 종교를 믿으며 살아간다. 개개인이 가진 신념이나 어떠한 종류의 믿음과는 전혀 상관없이 ‘신앙’에는 언제나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 법이라.

무릇 믿는 이들의 신앙이라 함은 어떠한 실체로서 손에 넣을 수 있는 물질적인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누군가를 지탱해주는 지지대이자, 길을 안내하는 등불이요, 신념을 주는 이정표에 가까운 것이니.

그리하여 생애의 믿음 되는 복음을 얻고자 사람들이 ‘선행’을 본질로 두는 삼천세계의 자락으로 발을 내딛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라.

그리하여 무얼 믿느냐 묻는다면, 그들이 입 모아 답하길.

“만신(萬神)이라 한다.”

수많은 신들의 위에 자리하는 진정한 어머니. 만생을 사랑으로 굽어살피며 구원하는 삼천세계의 보살신. 그 이름을 만신이라 하셨다.

삼천세계가 가진 교리라 함은 첫째로 선에 대한 칭의(稱義)에 있고, 둘째로 타인을 위한 나눔과 베품을 실천하는 것이며, 셋째로 세상에 깊게 뿌리를 내린 무속과 같은 회개와 뉘우침이도다.

보살 만신께서 여식에게 전하길, 나아가는 자에게 있어 언제나 내어주는 것은 기회이고, 사랑이며 삶 그 자체이니. 사람은 이를 주저 없이 행하고 받듬을 알라.

말씀하시길, 죄는 인과응보로서 돌아오니. 바라는 이는 스스로의 속죄와 의지를 보여라. 불신하는 자는 시험받을 것이고, 어김으로서 되갚으려 하는 자는 억겁의 불에 타 죽고 목이 베이고도 숨이 막혀 몸부림칠 것이니. 혼은 윤회의 길을 채 밟아보지 못한 채, 그저 지상 끝으로 내쫓기도다.

그것은 모두 어둠 속의 여로일지어다.

반하는 자, 생애 살아온 무엇보다 끔찍한 업보의 순환이리라.

믿는 이는 죽어서도 삼천세계 극락을 향한 천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며, 따르고 행하는 자는 생의 기회를 그 손에 거머쥘지니.

이는 모두 하늘의 베품──천혜(天惠)다.

그리하여 보살 만신께서 이르시기를.

“하늘의 베품이란 곧 인연이며 세상의 이치로다.”

천혜를 윤리로서 여기는 것은 교(敎)의 진정한 본분이요 본질이라. 이는 지극히 당연한 순리이고, 이치를 위하여 선을 휘두르는 일이노라.

 

분명 이야기의 서두를 꺼낸 것은 그인데도 정작 대화의 주제를 이끄는 것은 청년이었다. 놓여진 상황에 다소 황당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쨌거나 흥미롭긴 했으니 쭉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허어, 자네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아는구만?”

“예, 뭐.”

“……그래서 더 아는 게 있는가?”

호기심이 그득 묻어나는 물음이 둘 사이에서 이어지던 적막을 가르고 슬그머니 답을 재촉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로 돌아와야 할 목소리가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니. 거, 말을 꺼냈으면 마저 해야 할 것 아니야. 자기가 먼저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갑자기 그대로 입을 닫는다니,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나 잔인한 처사였다.

“아니, 왜 말을 하다 말고…….”

그가 조금 짜증이 섞인 얼굴로 말을 내뱉으며, 슬쩍 몸을 돌리자──놀랍게도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지 않은가.

“어?”

그의 입매가 삽시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곁에 앉아 있었던 남자의 모습을 찾아서 시선이 다급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허나, 상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사람의 그림자는커녕 자신 외의 다른 생물이라고는 한 톨만치도 뵈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껏 한참 이야기를 들려주던 청년의 모습은 그렇게 사라졌다.

째깍째각. 침묵 속에서 조용히 시간만이 흘렀다. 두려움에 눈을 감을 수도 없어 눈동자가 뻑뻑하게 메말랐다. 자신이 혹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하지만, 있는 힘껏 세게 뺨을 꼬집어봐도 그저 아프기만 할 뿐이고 변하는 것은 없었다. 이건 대체. 아니, 그렇다면 제 눈앞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사내의 존재는 대관절 무어란 말인가.

그는 자신과 함께 있었던 청년을 뇌리에 떠올렸다.

어두운 남색 머리에 얼굴에 드러난 커다란 화상자국, 밤그림자 속에서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던 금빛 눈동자와 반대쪽에 자리하고 있었던 빛바랜 듯 어스레한 회색빛 시선까지. 기억은 의심할 필요도 없이 아주 선명했다. 제 머릿속을 샅샅이 훑어가며 멍청하게 두 눈을 깜빡이던 그가 마른 입술을 축였다.

한 사람의 모습이 이렇게나 찰나에 사라질 수가 있나? 신기루라도 되는 것처럼?

딸랑, 딸랑.

때마침 어디에선가 선명한 방울 소리가 울렸다. 단순한 방울이 아니라, 마치 무당이 흔드는 것만 같은─맑게 울리는 무령(巫鈴) 소리에 가까웠다.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방울 소리와 휑하니 불어오는 찬 바람에 손끝이 얼어붙었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낯선 여자의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떠올린 생각에 그의 안색이 더욱 파리해졌다. 눈앞에 있었던 것이 만약 그가 생각한 대로 사람이 아니었다면. 눈앞에 벌어진 모든 상황을 그리 이해하기 시작하자, 등줄기에 차차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잔뜩 겁을 먹은 몸이 뒤늦게 벌벌 떨려왔다. 정말로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동시에 눈앞에서 검은 그림자가 갑자기 홱 하고 지나쳤다. 우아악! 저도 모르게 그가 크게 비명을 지르면, 제 앞으로 뛰어드는 물체가 검은 고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야옹.

그러나 살아있는 생물을 본 것으로 안도하는 마음이 든 것도 아주 잠시뿐. 그는 곧장 사방에서 울려대는 방울 소리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단 것을 알아차렸다. 오히려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더 빠른 속도로 울려대며 주변에 크게 퍼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그를 지배했다. 귓가에 메아리치는 소리와 어우러지듯이 저 멀리서 찢어지는 듯한 누군가의 웃음이 들렸다.

점차 무서움을 느끼기 시작한 그가 허둥지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곧장 정류장을 벗어나 어두컴컴한 시골길을 빠르게 내달렸다. 포장되지 않은 길목에서 다급하게 달음박질칠 때마다 주변에 자욱한 흙먼지가 일어났다. 얼굴은 먼지와 눈물로 금세 엉망이 되었지만, 당장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써줄 틈은 없었다.

허억, 헉!

심장이 터질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는 사람이 많은 민가 인근에 다다르고서야, 겨우 두려움을 이겨내고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숨이 차 멈춰서서도 연신 헐떡대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주저앉지 않고 버티고 섰다. 턱을 타고서 식은 땀이 뚝뚝 떨어졌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경험이었다.

그가 다시금 돌아본 자리에는 이 오래된 깡촌의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길이 있을 뿐이었다.

짙은 모래와 흙으로 이루어진 시골길은 밤의 어둠을 가르듯 훤히 제 갈 길을 트고 있었다.

어둠 속의 여로──.

마치 삼천세계가 말하는 일문과 갖지 않은가. 그가 불안한 눈으로 다시금 주변을 살폈다. 달려온 길목 구석에 드문드문 서 있는 낡은 가로등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희미한 불빛을 보이며 깜빡이다가, 얼마 가지 않아 완전히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모든 빛이 동시에 사그라들고, 남은 것은 끝없는 정적과 펼쳐진 음산함뿐이었다.

 

그 사이의 어둠 속에서 아득하게──청년이 했던 말이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보살 만신께서 이르시기를,
하늘의 베품天惠이란 곧 인연이며 세상의 이치로다.

만신행전 (萬神行傳)
*




사도행전 (使徒行傳, Acts of the Apostles) 에서 따온 명칭, 이는 예수가 승천한 이후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만신행전은 사이비종교인 삼천세계의 정신적 지주이자 믿음의 대상인 만신보살의 행적과 그에 대한 복음적 신앙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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