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ISSION

[어바등] 해저전야(海底前夜)

by 제이@J 2023. 12. 16.
*[Commission] 조각글 커미션 공지사항

*커미션 샘플 글, 카레우동 타입(3,439자), 드림

*어바등(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 신해량 & 드림주.
*욕설 주의, 네임리스 드림. 본편의 스포일러가 전제되는 드림이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BGM 오늘의 일기 Oneul - 인생은 마치 바다 (Surf)

 

 

 

“당분간 연락은 못할 것 같다.”

그렇게만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남자의 손목을 재빠르게 붙잡아 세운 그녀가 그것이 무슨 말이냐고 다급하게 되물었다. 이게 지금 자세한 설명도 없이 그렇게 사라지면 다인 줄 아나!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한 뻔뻔한 얼굴에 그녀는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찰 지경이었다. 심지어 이런 일이 한 번도 아니고 수십 번은 반복되고 있으니 더 속이 상했다.

“아, 신해량… 내가 너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답답하다 못해 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한 속을 애써 다스리며 그녀가 침착하게 말을 꺼내면 지극히 담담한 시선으로 상대를 마주하고 있던 신해량이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는 것이 보였다.

“서른네 번 정도.”

이, 씨… 거친 욕설이 그녀의 입술 밖으로 삐죽 빠져나오려다가 겨우 멈췄다. 안 그래도 사람들 많은 주말, 거기다가 이렇게 북적이는 프랜차이즈 카페의 한복판에서 꺼낼 단어는 결코 아니었던 터였다. 미간 한복판에 잡힌 주름을 펴듯이 꾹꾹 눌러대며 그녀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심호흡이라도 하듯이 숨을 한차례 가다듬은 후에야 겨우 짓씹듯이 느리게 말을 뱉었다.

“너는 내가 지금… 그거 대답하라고 말했겠냐, 응?”

“물어봤으니 있는 그대로 말한 것뿐이지.”

아오, 이게 진짜. 얄미움에 저도 모르게 컵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가 당장이라도 그 잔을 들어 상대방의 머리 위로 내리치고 싶다는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주 앉은 신해량은 여전히 너무나 태연한 낯짝으로 남은 커피를 비우고 있을 뿐이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자신이 대화 중에 어떤 점을 지적하며 되묻고 있는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면서 꼭 이렇게 되지도 않는 말을 꺼내며 시치미를 떼고는 했다. 이리 귀찮게 말을 돌리는 이유라 함은 분명 또 그녀와 같은 일반인은 결코 연관되어서는 안 될 기밀 보안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일 게 분명했다. 정확히 군인으로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고, 가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토대로 대강 추측만 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지마는. 어쨌거나 지금 제 눈앞에 있는 남자는 대한민국이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훌륭한 군인임과 동시에 그녀와는 지겹도록 오래된 죽마고우 사이였기 때문에──그 정도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분명 이해할 수 있긴 한데…….

“아니, 적어도 설명이 더 있긴 해야 할 것 아냐, 멍청아! 당분간이라니 언제까진데!?”

하아,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릴 낸 신해량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제 입가를 더듬었다. 그래, 이런 놈이지.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럴 때면 제 복장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럽게 입 무거운 이놈에게 솔직하게 말해보라고 살살 달래봤자 뭐가 달라지겠는가.

“갑자기 일이 생겼어. 2년 정도일 거야. 상황에 따라선 더 걸리거나 일찍 끝날 수도 있고.”

이 자식이 진짜, 너한테는 2년이 당분간이냐? 홧김에 그렇게 소릴 지를 뻔했던 그녀가 재차 화를 억누르며 심호흡을 반복했다. 제발 그만, 소리 지르지 말자, 진정하자. 마음 속으로 참을 인을 거듭 되새긴 후에야 그녀가 간신히 입을 떼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또 이야기 못 하고?”

“아니.”

“아, 그래 역시 그럴 줄…… 뭐?”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대답에 놀라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한 얼굴로 되묻자니 신해량이 선선히 대답하며 손에 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해저기지.”

나올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단어의 등장에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머리가 울렸다. 해외에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다는 수준의 말이라면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지만, 천하의 신해량이 해저기지를 간다고? 게다가 해저?

“설마 그, 북태평양 해저기지 말이야?”

“그래, 거기.”

“아니, 네가 거기에 가서 뭘 할 수 있다고?”

저명한 연구원이나 박사도 아니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분명 주먹질이나 몸 쓰는 일이 전부일 것이 분명한 신해량이 북태평양 해저기지라니.

“너 거기 가서 뭘 하는 데, 그것도 말해줄 수 있어?”

“엔지니어.”

“뭐어?”

아무리 군인이라는 직업이 위에서 까라면 까는 직업이라고들 하지만 이 정도로 막무가내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니, 물론 신해량이 배우면 어떤 일이든 곧잘 할 줄 알게 되는 편인 것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그런 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것도 엔지니어로? 얘가 기술의 기자는 알긴 하나? 마치 물가에 둔 아이 마냥 상대를 위아래로 훑어보고선, 당혹스러움과 더불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내비치면 신해량은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는 듯이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거짓말이지? 너 나한테 거짓말하려고 작정했구나? 아니, 진짜로 뭐 하러 가는데?”

그에게 거짓말 할 이유가 없음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묻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기실 신해량이 숨긴 것이란 이것만이 아닐 것이 명백했다. 절대로 제 입으로 순순히 그 해답을 내주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녀로선 따지듯이 그렇게 캐묻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한참을 말없이 가만히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신해량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는 것이 보였다. 입가를 끌어올리는 유순한 선이 곱게 휘어졌다. 여느 때보았던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그 여상스러운 미소를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묘한 불쾌감이라고 해야 할까, 목구멍 안쪽에서부터 울컥하고 치솟을 뻔했던 고함을 애써 억누르고서 그녀가 천천히 자리에서 숨을 골랐다. 또 다시 호흡을 반복하며 감정을 다스리려는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한 것인지, 신해량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제 턱을 괴며 생각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담담한 시선이 심히 거슬렸다.

“야.”

화를 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마치 자신이 혼자 이상한 착각이라도 하고있는 것만 같은 그 넉살스러운 모습에 살짝 짜증이 일었다.

“이게 지금 친구가 걱정하는데 웃어?”

빡!

테이블 아래에서 묵직하고 둔중한 소릴 내며 남자의 오른쪽 정강이를 정확히 노려 걷어차는 그녀의 솜씨가 범상치 않았다. 인체의 급소를 정확히 노린 갑작스러운 일격임에도 불구하고 신해량은 변화 없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찬 쪽은 자신인데 왜 내가 더 아파야 하냐고 투덜대며, 제 발등을 잠시 움켜쥐며 끙끙거리던 그녀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신해량, 이 힘만 센 고릴라 같은 놈.

“언제?”

언제부터 가는데, 그렇게 또 물으면 신해량이 테이블을 손끝으로 두드리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일.”

“씨발, 신해량! 이 미친놈아!”

쾅! 그녀가 기어이 손에 쥔 머그컵을 테이블 위로 내려쳤다. 거기다가 끝까지 참던 욕설까지 제 입 밖으로 크게 내뱉고야 말았다. 이미 엎지른 물이었고, 저지른 일은 쉽게 돌이킬 수 없는 법. 매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한순간에 두 사람이 앉아있던 테이블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건데!”

이미지 출처 ⓒ pixabay

'COMMISS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차/Fate] 여름밤, 달빛 아래  (0) 2023.08.01
[1차] 천혜의 교리  (0) 2023.08.01
[FF14] 그 사람이 떠난 후에  (0) 2022.12.03
[1차] Remind of Accident  (0) 2022.11.18
[1차] Merry Veil✽Dress up!  (0) 2022.10.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