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ission] 조각글 커미션 공지사항 *커미션 샘플 글, 오늘의 커피 타입(3,603자), 2차 *2차/자캐. *캐릭터는 1차에 해당하나, 배경이 되는 세계관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므로 2차로 기재합니다. Fate 시리즈의 세계관이 기반이 되어 있는 자작 캐릭터, 2인 페어 기반. 캐릭터의 이름은 덮었습니다. *BGM Alter Ego - ペネロープに吹く風 |
고요한 밤이었다. 저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소금기의 짠맛이 피부를 타고서 코끝을 가벼이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머나먼 바람에 실려 온 바다 냄새가 천천히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을 가득 채워갔다.
“바다는 오랜만이야.”
발에 치이는 모래를 한 번에 걷어내기라도 하듯이, 성큼성큼 발을 내딛던 C로부터 나직한 목소리가 새었다. 바다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에 얽힌 좋은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을 뿐이니 이건 그저 낯설다는 감정에 가까웠다. 나아가는 걸음마다 새하얀 모래가 푹푹 밟히는 것이 조금 거슬렸으나, 아예 걷지 못할 정도로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저도요.”
지난 과거를 떠올리기라도 하는 것일까, 깊게 가라앉은 시선을 바다에 고정한 상대가 다시금 몇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보였다. 서로 진심으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기는 했다만─그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만드는 정중한 어조가 새삼스레 들려오니 어쩐지 이 모든 순간이 멀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주변을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 아래로, C보다도 훨씬 앞서 나아가고 있던 이의 새하얀 등이 보였다.
──아.
그가 점차 자신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K.”
자신도 모르게 C가 그를 불러세웠다. 다급하게 달려간 몸이 K의 뒤를 쫓았다. 바다 쪽에서 다시금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검은 비단을 연상시키는 고운 머리카락이 그 부름을 알아차리고 이쪽으로 바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쏴아아. 바람과 함께 일렁이는 파도 소리가 한순간이지만 희미하게 지워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C는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는 보석 같은 붉은 눈동자가 그늘진 어둠 속에서도 제법 선명하게 빛나고 있음을 알았다.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는 시선. 무엇보다 올곧은 이 시선이 있었기에, C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 그와 살아가기를 택하였던 것이었다.
피하지 않고 뻗어오는 K의 손길이 곧 C에게로 향한다.
서로를 지탱하듯이 마주 잡은 두 손가락이 상대를 단단히 얽어내는 것이 보였다.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C를 내려다보며 K가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가 그렇게 급한데, C.”
기억하기에도 버거운 지난한 나날들을 떠올리게 만들던 그리운 어조가 어느덧 다시 일상적인 평이한 투로 정정되어 들려왔다. 그것을 듣고 깨닫자마자 굳은 C의 어깨에서 단번에 힘이 빠졌다.
“나는…….”
K에게 단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에게서는 사실 늘 바다와 같은 향이 느껴지고는 하였다. 푸르게 펼쳐져 있는 하늘과 바다.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바람에는 짠맛을 지닌 소금기가 어렴풋이 넘실거리고, 아득하게 이어져 있는 먼 그것이 한편으로는 몹시 그와 닮아있다고 느끼면서도─또 감히 그것을 안타깝게 연민하듯이 바라보고는 했었다.
네가 갑자기 떠날 것만 같았어.
마른 입술을 조용히 깨물며 C가 제 혼란스러운 마음을 수습이라도 하듯이 한차례 옆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순간적이었지만 그런 불안감이 들었다는 사실은 죽어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K가 결코 말없이 그의 곁을 떠날 일이 없음을 알고 있어도─ 가끔씩 이렇게 솟아나는 찰나의 감정이란, C라는 존재의 근간을 크게 뒤흔들고는 하였다.
“……그냥, 그럴 수도 있지.”
꼬옥 힘주어 마주 잡은 손에 힐끗 눈길을 주고는, C가 애써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을 뱉었다.
K가 그에게 있어서 든든한 버팀목이자 서로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주는 것처럼, C 또한 그에게 그러한 동등한 파트너가 되기를 줄곧 바라고 있는데.
젠장, 이래서야 자신이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의지하는 꼴이 아닌가.
혹여 버려질까, 눈앞에 있는 상대를 놓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파도처럼 밀려드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 같은 자신의 치태를 되돌아보며 C가 속으로 한참 한탄했다.
스스로가 지나치게 부끄럽게 느껴진 나머지 괜스레 제 귓가가 붉어지는 것만 같았다. C는 창피함을 숨기기 위한 것처럼 얽혀있는 손을 허둥지둥 뒤로 밀어냈다. 그런 C의 모습을 한참 가만히 마주 보고 있던 K로부터 다시금 맑은 웃음소리가 새었다.
그래, 사실 누가 봐도 훤히 들여다보일 속내였으니─ 특히나 언제나 함께 있는 이라면 그 마음을 어찌 꿰뚫어 보지 못하겠는가.
그것을 기어코 숨기겠다고 헛된 허세를 부리고 있는 제 하나뿐인 상대를 향하여 K가 연신 키득대자, 그것을 참지 못한 것처럼 C가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아, 좀! 웃지 마!”
알아도 모른 척하라며 성을 내는 그 모습에 K가 다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콕하고 옆구리를 찌르는 시늉을 하며 으르렁대는 그 모습이 마치 경계심 많은 자그마한 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했더랬다. 물론 K는 현명했으므로,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있지, C. 가끔은 말이야.”
아주 가끔.
K는 지금과 같은 이 모든 시간이 한순간의 물거품과 같은 것을 알아도 간절히 매달리고 싶은 기분이 들고는 하였다.
서번트로서 이 땅에 소환되어, 마스터인 그를 만나게 되고 적과 대치하며 창을 휘두르던 수일의 밤. 지금 이렇게 현세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말하자면 한순간의 환상이라는 것을 앎에도 그는 더없는 행복을 느끼고는 했다. K가 흐릿하게 웃었다.
이러한 온화한 일상을 보내는 것은 과연 얼마 만일까. 그간 오래도록 기억하고 되새겨온 과거의 삶을 돌아보아도, 이러한 기분이 드는 나날을 가진 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런 순간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허리를 숙인 K가 해변의 모래에 조용히 손을 가져가면 굳은 살이 박힌 손아귀 안에서 스르르 고운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옅게 물기를 머금은 조개 껍질이 물결을 따라서 그들의 발치로 떠밀려오는 것이 보였다.
──말해봐, 그럼 네 소원은 뭐지?
처음 그의 마스터가 꺼내 들었던 질문에─K는 제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가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정확하리라. 그도 그럴 것이 K가 유일하게 바랐던 것은 스스로의 소실이자 그간 자신이 쌓아온 역사의 삭제이며, 존재 그 자체의 부정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
말하자면 그건 절망의 끝에 다다른 한 인간의 바람이였다. 그간의 치열한 삶에 지치고, 더 이상 숨을 쉬길 바라지 않는 자의 지독한 염원. 죽은 자의 마지막 소원.
그러나 우습게도, 그런 죽은 자를 다시 숨 쉬게 만든 것 또한──인간이 되었다.
숨기고 있던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입 밖으로 끄집어내기까지, 그리고 그러한 순간이 오기까지 둘 사이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K의 시선이 바다에서 멀어지고 다시금 C를 향했다. 천천히 다가서는 청년의 그림자를 따라 자줏빛으로 너울거리는 눈동자가 그를 고스란히 비추었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포근한 체온과 사랑스러운 잿빛 머리카락에 살며시 입을 맞추며, K가 눈을 가만히 내리감았다. 공포를 읊조린 입술이 행복감에 젖어 드는 것이 보였다.
보라. C라는 인간의 형태로 그의 덧없는 바람은 종결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이 순간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끌어안은 두 사람의 사이로 눈부시게 달이 빛났다. 가벼운 걸음으로 모래사장을 거니는 두 사람의 위로 바닷바람의 서늘함이 함께 스몄다.
은은하게 드리우는 밤하늘의 아래에서 둘은 한참이나 바닷가를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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