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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

[1차] 파밀리아의 하루

by 제이@J 2021. 12. 2.
*[Commission] 조각글 커미션 공지사항

*커미션 샘플 글, 오늘의 커피 타입(10,435자)

*1차, 한겨울&한아란&한여름

*자캐, 논커플링

*BGM MONKEYBGM - Jazz piano BGM COVER playlist

 

포근한 가을 어느 날이었다.

느긋한 클래식 음악의 선율이 귓가에 맴돌고, 텅 빈 매장 안을 빙 둘러보듯 시선을 던진 그녀가 이내 카운터 위에 엎어지듯 깊게 얼굴을 파묻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라서인지, 아니면 오늘이 평일이라서인지 매장 안이 유난히 한가롭기도 했다. 후아암, 하고 입이 쩍 벌어지더니 절로 하품이 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따사로운 날씨에다가 당장 손님도 없으니 지금 이대로 퇴근하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카페의 오전을 책임지는 그녀로선 빨리 저녁이 되고, 자신과 교대할 아르바이트생이 찾아왔으면 하는 그런 하루였다.

한국대학교 인근에 자리하고 있는 개인 카페─파밀리아(famiglia)[각주:1]의 하루는 늘 평온하면서도 분주했다.

가게 곳곳에 놓인 앤티크풍의 가구와 우아한 소품들, 선반 위에 줄지어 앉아있는 귀여운 테디베어. 거기다가 해외 곳곳에서 사 모은 것이 아닐까 싶은 다양한 장서들은 가게에 찾아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독서에 흥미를 가진 다양한 손님들이 이 카페로 찾아오고는 했다.

전체적으로 브라운 계열의 포근하고 아담한 평온을 선사하는 매장의 인테리어는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로 하여금 무척이나 좋다고 호평을 받는 포인트 중 하나로 꼽혔다. SNS나 블로그 등지에서 이미 한국대 인근에 있는 디저트가 제일 맛있는 카페로 불리며 그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었으니, 손님들이 틈이 날 때면 언제나 파밀리아로 발길을 옮기는 이유가 분명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이 작은 개인 카페에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첫 번째 이유를 꼽자면─그것은 바로 이 가게의 젊은 ‘사장들’과 ‘매니저’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이 피곤해보이는데…… 어제 늦게 주무셨나봐요?”

얼마나 얼굴을 오래 파묻고 있었을까. 누군가의 기척이 제 곁으로 나오더니, 이내 그녀가 누워있는 카운터 위를 톡톡 두드렸다. 생각에 잠겨있었던 터라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테이블 위로 가볍게 느껴지는 진동에 그녀가 꿈지럭거리며 고개를 들자니, 말끔하고 단정한 하얀 손끝이 그녀의 시야 앞에서 살랑이며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어, 매니저님…….”

카페의 매니저인 한아란이었다. 제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이는 것인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서, 그녀가 깜짝 놀라더니 이내 마른세수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이, 피곤은요. 오늘은 제가 오픈하는 날인데 일찍 오셨네요!”

“오픈 준비가 할 일이 많잖아요. 일을 도우려고 조금 먼저 왔어요.”

“아니, 정말요?”

깜짝 놀라 되물으면 매니저님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모르게 빤히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가 할 말이 있냐는 것처럼 살짝 옆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 사소한 행동 하나마저 자연스럽게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우리 매니저님은 진짜 유죄다, 유죄…….”

“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는지 매니저님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되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서 다시 제 머리를 옆으로 가만히 저을 뿐이었다. 이 죄 많은 남자 같으니. 얼굴도 단정하고 준수하지, 성격도 좋지. 이래서야 우리 가게에 손님들이 안 꼬이게 생겼나. 심지어 우리 한매니저님은 얼굴만이 아니라 참 마음씨도 고운 청년이었다. 물론 이 성실함과 다정함에 가슴 설레하며 그에게 제 마음을 고백하다가 벌써 여덟 명이나 되는 알바생들이 차이고 울며불며 가게를 뛰쳐나갔다는 것을 듣는다면 아마 생각이 또 달라지겠지만서도. 파밀리아의 아르바이트직 1년 6개월의 경력을 지닌 자신 또한 저것이 정말 아무런 의도가 담기지 않은 순수한 호의라는 것을 몰랐다면, 그리고 만약 자신이 애인이 없었다면 홀랑 넘어가고 말았을 것이었다. 얼마 전엔 저러다가 이상한 사람이 꼬이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 사장님들에게 슬쩍 말해두자니 단단히 주의를 주는 것 같긴 하던데, 어째 완전히 고쳐지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몇 번 말을 하다 보니 본인도 조금 자각은 생긴 것도 같긴 했다. 이젠 제법 끈질긴 알바생이나 손님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하는 모양이기도 했고. 물론 진상손님 대처 레벨 99쯤 되는 그녀가 보기에는 한매니저의 대응은 아직 한참 멀긴 했다.

“매니저님, 이것도 다 사장님한테 이를 거에요…….”

“어…… 제가 뭔가 실수했나요?”

“아니, 그게…….”

딸랑.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역시 옛 어른들 말씀에는 틀린 것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출입구에 달린 자그마한 앤틱벨이 맑은 소리를 내며 울리더니, 조금 전에 그들이 입에 담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매장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 것이 보였다.

“어서오세…… 사장님!”

“아, 겨울이 누나. 어서와.”

거의 척수반사 수준으로 반응하여 인사말을 내뱉던 것이 사장님의 얼굴을 보자마자 쑥 들어갔다. 자그마한 체구에 단아하고 섬세한 분위기를 휘감은 여성이 차분하게 눈을 내리깔고서 카운터를 향하여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긴 속눈썹이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떨리고, 그 아래로 푸른 수면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는 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그 아름다움에 저도 모르게 숨이 멎었다. 그녀의 뜨거운 시선을 느낀 사장의 작은 어깨가 잘게 떨렸다. 길게 늘어트린 검은 머리카락이 그 움직임을 따라 가벼이 몸을 떨더니, 얼굴의 반을 내리덮은 머리카락이 사르륵 미끌어져 내렸다. 지나가는 말로 듣기로는 과거에 사고로 인하여 얼굴에 화상을 입게 되었다는 모양인 카페의 사장─한겨울은 상처로 인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이 있어서인지 남보다 훨씬 가녀리고 기가 약한 분위기를 주는 처연한 미인이었다.

“사장님, 오늘도 참 예쁘시네요.”

뇌내 필터를 제대로 안 걸치고 나온 제 속마음이 무척 당당히도 튀어나왔다. 이 말을 거의 1년이나 하고 있으니 사장님도 슬슬 익숙해지면 될 텐데, 부끄러움이 많은 우리 사장님은 그런 자신의 말을 듣고선 뺨을 새빨갛게 물들이더니 빠른 걸음으로 매니저의 등 뒤에 숨었다. 그녀가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란 것을 알아서인지, 싫은 것은 아닌 눈치였지만 당혹스럽고 놀란 것 같았다.

“사장님을 너무 놀리시면 못써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드럽고 유하기만 하던 한매니저의 얼굴이 제법 단호한 표정을 하고선, 똑 부러지게 주의를 주었다. 그런 매니저의 말에 알바생인 그녀가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였다고 그녀가 곧장 고개를 숙이자, 매니저의 등 뒤에 숨어버렸던 사장님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것이 들렸다.

“아니, 괜찮아요…….”

우리 사장님의 목소리도 참 고왔다. 크으. 조용히 속으로 몇 번씩 감탄하고 있자니, 그 뒤를 이어서 다시 딸랑하고 입구 앞에서 벨이 울렸다. 이어서 들어온 잘생긴 청년의 얼굴을 보니, 그녀의 기분이 또 몹시 흡족해졌다. 좋은 아침, 이라고 인사하는 시원스러운 남자의 목소리에 그 자리에서 사이다를 한 병 따 마신 듯한 흐뭇함이 들어찼다. 거의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늘 감탄스러운 상사들이었다.

아, 끝내준다. 그래 이 맛에 여기서 알바하는 거지.

미인과 미인은 원래 같이 붙어있을 때 더 최고인 법이었다. 얼빠인 그녀는 몹시 기분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주차하고 오신 거예요? 오늘 운전은 둘째 사장님이 하셨나보죠?”

“하하! 그렇죠, 아란이가 먼저 가는 바람에.”

“불편했을 텐데, 그냥 나를 부르지 그랬어.”

“괜찮아, 가게까지는 멀지도 않았잖아. 가끔은 이렇게 누나랑 둘이서 드라이브도 할 수 있지.”

“원래는 내가 일찍 나와야 했는데…… 미안해, 아란아.”

“아냐, 누나. 괜찮아.”

서로가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는 광경이 이어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문득 눈앞에 있는 둘째 사장과 시선이 마주쳤다. 하하, 하면서 비눗방울이 터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맑고 가벼운 웃음소리를 낸 그가 그녀를 향해 싱글거리며 웃어 보였다. 그가 바로 이 가게의 사장 중 하나이자, 겨울의 동생이기도 한 한여름이었다.

가게 뒤편에 있는 전용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온 것인지 둘째 사장─알바생인 그녀는 속으로 자칭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있었지만─의 손에 들린 차키가 빙글빙글 허공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주로 매니저님이 운전해서 함께 오고는 하는데, 오늘은 또 가게 오픈 준비를 돕겠다고 일찍 찾아온 바람에 운전은 그의 몫이었나보다.

운전이라……. 슬쩍 그녀의 시선이 둘째 사장의 오른쪽 무릎으로 떨어졌다. 평범하게 걷고는 있지만,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걸음걸이나 발소리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밝고 화사한 인상으로 웃어 보이던 그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깨를 가벼이 으쓱였다. 대수롭지 않은 듯이 보이는 태도에 그제야 자신이 또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허겁지겁 고개를 깊이 숙여 재빨리 사과를 했다. 누구보다 해맑은 미소를 띄우는 청년에게는 어두운 그늘이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 또한 예전에 큰 사고로 인하여 다리를 잃었다는 과거가 있다고 했다.

“아, 매니저님. 일단 손님 오시기 전에 물품 체크만 한번 하고 올테니까, 카운터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네. 제가 맡을게요.”

“아란아, 앞치마는 내가 해 줄게.”

그녀의 말에 가벼이 고개를 끄덕인 매니저가 카운터 안쪽에 보관되어 있던 직원용 앞치마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사장님이 총총 다가가서 매니저의 허리에 끈을 묶어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낯을 몹시 가리는 사장님이었지만, 가족인 두 사람에게는 몹시 밝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아, 그럼 나도 아란이랑 같이 카운터 볼까?”

둘째 사장의 녹색 눈동자가 마치 마음에 드는 선물상자를 받은 아이처럼 눈부시게 반짝였다. 두 사장님이 카페에 있다고 해도 어차피 제대로 일을 하게 되는 것은 결국 눈앞의 한매니저 밖에 없으리란 것을 아는 그녀의 눈빛이 일순 측은해졌다. 안타까운 듯이 바라보는 그 시선을 알아차린 것인지 둘째 사장의 말에 대답 없이 어색하게 웃으며 넘기는 매니저의 모습에 일개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한 그녀는 그저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어째 오늘 하루도 아르바이트 시간이 몹시 길 것 같았다.

 


 

카페 오픈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손님들이 카페에 잔뜩 몰려들었다. 이제 곧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샌드위치나 디저트를 주문하는 손님도 제법 많았다. 어째 낮부터 사람이 이렇게 몰려드는 것을 봐서는 오후에 마감 타임을 맡는 동료는 아마 갈려 나가다 못해 죽어 나갈 것임이 분명했다. 꼭 이렇게 갑자기 손님이 몰리더라.

속으로는 한참 투덜대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서 커피머신을 꾹 누르자니, 곧장 윙윙거리며 도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힐끗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제 옆에서 커피 내리는 것을 돕는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평범하게 아메리카노를 내리는 것이 전부일 뿐이니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샷 하나를 내리는 데도 엄청나게 신경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사장님, 저 잠깐 화장실 가려는데…… 여기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저…… 네, 다녀오세요.”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 뿐인데, 이렇게 홀로 두기 불안한 것은 왜일까.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한 그녀가 앞치마를 잠시 내려두고 자리를 벗어나자,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매니저님이 다녀오라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란히 카운터를 보고 있던 둘째 사장은 그 특유의 인싸력……아니, 친화력을 발휘해서 수다를 떠는 여자 손님들 사이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손 안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하는 모습을 슬쩍 뒤에서 들여다보자니 손님들과 같이 게임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사장님! 거기서는 점프! 점프해야죠!”

“그 아래에서는 슬라이딩!”

“아하하, 아깝다!”

손님들이 둘째 사장의 화려한 게임 실력에 흥분했는지 손짓 발짓으로 훈수를 두고 있었다. 그 소리에 맞춰 둘째 사장도 무어라 크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 들렸다. 아마 얼음으로 만들어진 자그마한 캐릭터들이 마법사의 힘으로 굳게 닫힌 냉장고 안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달린다는 내용의 게임이었던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마음 편히 담소를 꽃피우고 있는 둘째 사장의 모습에 그녀가 살짝 제 턱을 괴었다. 저렇게 보고 화가 안 나나. 만약 자신의 동생이었다면 어딜 놀고 있느냐며 짜증을 냈을 것이었다. 어째 사장님과 매니저님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착하다고 해야 할지…….

“한여름, 일 좀 해.”

“아, 이번 판만! 이 판만 하고!”

아하, 그래도 할 말은 하는 거구나. 가만히 생각하던 그녀가 천천히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 판만 하고 일을 돕겠다고 칭얼대는 둘째 사장의 말에 매니저님이 한숨을 내쉬더니 이번 판만이야, 하고 못을 박았다. 찾아드는 사람들이 불어나니 카운터 앞이 조금씩 붐비기 시작했다. 빠져나간 손님들이 금세 다시 채워지면서 카페 안이 더 떠들썩해지고 있었고, 뒤에서 커피를 만드는 것을 돕는 사장님도 허둥지둥 바빠 보였다. 복잡한 주변을 살피다 보니 자연스레 걸음이 빨라졌다. 빨리 일을 보고 돌아와야지. 아무리 그래도 사장님이 보고 있는 앞에서 대놓고 농땡이를 치기에는 조금 꺼려졌다.

조용히 그녀가 자리로 돌아오면, 어째서인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매를 한 사장님이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자신을 마주 보았다. 그녀가 자리를 잠시 비운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놀란 마음에 조용히 시선으로 주변을 살펴도 크게 이상한 일은 없어 보였다. 대체 무슨 일이지. 그녀가 의아한 얼굴을 하며 매니저를 눈짓하면 어쩐지 필사적으로 보이는 사장님의 손길이 매니저님의 옷깃을 꽉 잡아끌고 있었다.

“누나는 좀 쉬어. 나머지는 한여름한테 시키면 되잖아.”

“아, 아냐. 나도 도와야지. 그래도 내가 사장인걸.”

무슨 일인가 싶어서 멍하니 상황을 보고 있자니, 벌벌 떠는 사장님이 굳은 결심을 한것처럼 제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카운터로 척척 걸어가는 걸음이 어쩐지 나사 빠진 장난감 인형같아 걱정스러웠다. 딱딱한 얼굴로 그 앞에 선 그녀가 크게 한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더니, 이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문하시겠어요?”

바짝 긴장한 손길이 카운터 앞에 서더니, 불안함을 가득 담고선 허공을 헤맸다. 한 손은 여전히 매니저님의 옷깃을 붙든 채였다. 메뉴판을 건네는 조심스러운 사장님의 손길에 그제야 그녀는 사장님의 눈앞에 있는 손님들이 단체 손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장을 차려입은 모양새를 보아하니, 이 근처 회사에서 잠시 차라도 한잔 마시러 나온 참인 것 같았다.

“팀장님, 뭐 드실래요?”

“아, 그냥 아아메로 통일하죠.”

“이렇게 추운데 아이스로요? 저 따뜻한 게 끌리는데.”

“저도 오늘은 단 게 마시고 싶어요.”

자기들끼리 무엇을 마실까 하고 카운터를 앞에 두고 두런두런 말을 나누고 있는 손님들을 가만 바라보고 있자니,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서 있던 사장님이 결국엔 천적을 피해 포르르 날아 도망가는 작은 새처럼 매니저님을 방패 삼아서 스탭룸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 보였다. 미안하다고 작게 사과하는 한매니저의 모습을 보고선 내가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내젓자, 그가 이어 쓴웃음을 짓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사장님에게 박혀있었다. 많이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저쪽에서 손님들과 도란도란 이야길 나누는 둘째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럼 손님은 이 근처에 사는구나. 우리 카페 자주 놀러와요. 응?”

어째 단순히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니라, 손님을 본격적으로 꼬시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잘생긴 청년이 저렇게 말갛게 웃으면서 말하면 어느 손님이 안 넘어가겠어. 파밀리아가 이리도 붐비는 이유는 역시 이 상사들이─정확히는 잘난 저 미모가 문제였다. 그 모습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처럼 보고 있으니 사장님을 조심히 달랜 매니저가 재빨리 다가와서 둘째 사장에게 말을 붙였다.

“한여름, 누나 잠깐 쉴 거니까 카운터 좀 봐 줘. 정말 잠깐이면 되니까.”

“하는 수 없지, 숙련된 카페 주인인 내가 나서야겠네.”

어깨를 으쓱이며 둘째 사장이 당당히 카운터 앞을 가로채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놀기만 하던 이를 자연스럽게 달래고선 매니저가 그녀에게 가만히 눈짓했다.

저건 둘째 사장님만으로는 불안하니 곁에 붙어서 도와달라는 뜻이로군.

“네, 손님. 오늘 디저트는 특별히 스마일 하나 포장해 갈래요?”

활짝 미소짓는 둘째 사장이 또 손님을 꼬시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그녀는 말없이 카운터와 그 사이로 끼어들기를 시전했다. 어어, 하고 둘째 사장이 어물거리는 사이에 그녀가 손님들에게 주문을 요청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모습을 본 매니저가 다른 사람이 안 보는 틈에 자신과 시선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백전연마의 알바생인 그녀도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시간이 완전히 지나고 다시 사람이 조금 뜸해지는 시간대가 돌아왔다. 조금 전만해도 사람으로 가득해서 붐비던 광경이 거짓말 같은 정도였다. 느긋해진 가게의 정경을 지켜보며 그녀가 늘 그랬던 것처럼 쩍하니 하품을 선보였다.

“후아암.”

그것을 뒤따르는 것처럼 둘째 사장도 크게 하품을 했다. 한가로운 시간이다보니 마찬가지로 따분한 모양이었다. 금방이라도 꾸벅꾸벅 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그가 문득 테이블에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조금 전의 반쯤 감긴 눈은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별을 수놓기라도 한 것처럼 한껏 반짝이는 시선을 한 둘째 사장이 이내 스탭룸으로 달려가 무언가를 손에 한가득 들고 나왔다.

뭐가 그렇게 다급한 것일까,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다가온 둘째 사장은 제 손에 들린 물건들을 카운터 위에 하나씩 줄지어 늘어놓기 시작했다.

유리구슬에 딱지, 바둑돌에 공기놀이…… 거기다가 젠가에 무슨 게임 룰북까지 놓여져 있었다. 우리 카페는 알고 보니 보드게임카페였던 것일까.

“손님이 적으니까 잠깐 놀자!”

“……예에?”

황망한 시선으로 그녀가 둘째 사장을 바라보면 눈부시도록 밝은 얼굴로 웃고 있는 그가 보인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사장님과 매니저도 잠시 의아한 얼굴을 했다가 이내 카운터로 다가서는 것이 보였다.

“아니, 둘째 사장님. 저기…… 정말 하시려고요?”

“원래 일을 할 때는 잠깐 쉬는 시간도 갖고 그래야 해요.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지금은 손님도 없으니까…… 잠깐이라면야!”

카우터 위에 놓여진 공기돌과 유리구슬을 신기하다는 것처럼 만지작거리던 사장님이 조금 들뜬 것처럼 젠가를 쌓아 올리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아니, 정말로 할거야? 마지막 동앗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가 곁에 서 있던 매니저를 바라보면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포함하여 매니저의 양 옆에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찐한 시선이 쏟아지고 있었다. 결국 양 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한 그가 고개를 젓더니, 이내 사장님이 쌓은 젠가 하나를 굉장히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빼냈다.

“……다음은 한여름이야.”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다음은 나야.”

아니, 그런…… 한매니저, 믿었던 당신마저!

우리 일하는 중 아니었어요? 작게 투덜거리자 이 정도는 괜찮으니 걱정말라며 사장들이 밝게 웃었다. 한가로운 것은 마찬가지였던 그녀도 결국에는 세 사람의 놀이에 함께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젠가를 시작으로 구슬치기에 딱지치기, 이어서 오셀로까지 했는데도 싸그리 다 이 두 사장님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녀는 오늘 자신이 근무하는 카페의 매니저님이 생각보다 게임을 못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단순히 이 두 사장이 남보다 조금 더 운이 좋은 것일지도.

 


 

해가 저물고 천천히 붉은 노을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아르바이트 시간이 곧 끝날 무렵이 되었다. 알바 동료와 주고받는 톡방을 슬쩍 확인하면, 곧 카페에 도착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오늘도 참 보람차고 힘든 하루였다. 곧 월급날이라는 사실과 코앞에 다가와 있는 퇴근 시간만이 그녀를 기쁘게 했다.

“사장님들, 매니저님. 저는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아, 조심히 가세요. 내일 뵐게요.”

“내일 뵙겠습니다.”

웃으며 고개를 숙이면, 스탭룸에서 오후에 사용할 물품을 체크하던 매니저가 사장님과 함께 인사를 건넸다. 그 뒤를 이어서 카페에 놓여진 고풍스러운 소파 위에서 뒹굴거리던 둘째 사장이 팔을 크게 흔들며 인사하는 것이 보였다.

“조심히 가세요!”

“네, 사장님들도요.”

찬찬히 양옆으로 손을 흔들어주는 모양새에 그녀 또한 웃음을 터트리고는 같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사장님들의 행동도 그렇지만 덧붙이는 인사마저 제각각인게 조금 재미있던 탓이었다. 퇴근하는 그녀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천천히 파밀리아를 나서는 그녀의 입가에 즐거운 미소와 함께 콧노래가 흥얼거리며 새었다.

거의 매일같이 카페에서 일을 하며 그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었지만, 그녀는 매번 저렇게나 다른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사실이 참 신기하고는 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어떻게 저리도 서로 다른 사람들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지, 그들이 ‘가족’이라는 것 자체를 의심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얼굴도, 성별도, 성격도 전부 다르고 제각각이기는 하였으나, 하지만 그녀가 보기에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분명한 가족이었다.

거기에 타인이 의심할 여지 따위는 결단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서로를 저렇게 따스한 눈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보면, 누구나 그들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한 가족’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1. 파밀리아 (famiglia) : 이탈리아어로 ‘가족’을 의미하는 단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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